가부키와 연극

쇼치쿠의 가부키와 연극

가부키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된 일본의 전통 예능이지만, 민간 기업인 쇼치쿠가 제작과 흥행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1890년, 교토 기온에 있던 ‘기온칸’이라는 극장에 당대 최고의 가부키 배우였던 9대 이치카와 단주로가 출연하여 교토 지역의 간판 배우로 활약하던 초대 나카무라 간지로와 함께 공연하게 되면서 큰 화제를 불러모았습니다. 이 무대를 극장 안의 매점 일을 도우면서 뚫어져라 주시하던 쌍둥이가 쇼치쿠의 창업자인 시라이 마쓰지로와 오타니 다케지로입니다. 이 역사에 남을 만한 유명한 무대가 120년 이상에 걸쳐 연극, 영화 제작, 흥행을 사업으로 하는 쇼치쿠가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윽고 두 사람은 가업이었던 극장 매점을 경영하는 한편, 가부키가 주를 이루는 연극 흥행에 직접 관여하기 시작합니다. 쇼치쿠는 오타니 다케지로가 교토 신쿄고쿠 지역에 있던 ‘사카이자’(현재의 교토 쇼치쿠 사카이자 빌딩)의 흥행 책임자가 된 1895년을 쇼치쿠 창업의 해로 정하고 있습니다.

T형제는 머리를 맞대고 힘을 하나로 모아 메이지라는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흥행 시책을 추진하면서 잇달아 히트작을 세상에 내놓는 한편, 신쿄고쿠 지역에 즐비하던 극장을 매수. 1902년에는 시라이 마쓰지로(白井松次郎)의 ‘松’, 오타니 다케지로(大谷竹次郎)의 ‘竹’을 딴 ‘마쓰타케(松竹) 합자회사’를 설립하고, 교토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미나미자’의 경영권도 손에 넣게 됩니다.

신진기예의 흥행사로서 두각을 나타내던 두 사람은 당시 서일본 최대 극장가로 일컬어지기에 손색이 없었던 오사카 도톤보리의 극장들도 차례대로 산하에 두었고, 1910년에는 도쿄에 진출하여 ‘신토미자’를 매수. 그리고 3년 후에는 이미 일본을 대표하는 극장이라는 브랜드 이미지가 확립되어 있었던 ‘가부키자’의 경영권까지 획득하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이를 전후하여 일본의 전통 인형극 ‘분라쿠(닌교조루리)’의 흥행을 담당하던 ‘분라쿠자’가 경영 위기에 직면했을 때 당시 최고 대표자였던 다케모토 셋쓰다이조의 요청에 따라 분라쿠의 흥행도 쇼치쿠가 담당하게 되면서 1963년에 분라쿠가 국가에 헌납될 때까지 반세기 동안 분라쿠 업계의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에도 시대부터 근대에 걸쳐 가부키는 극장마다 특색 있는 배우진을 모아 흥행했습니다. 이른바 군웅할거의 체제였던 것이 쇼치쿠가 파죽지세로 진격하여 잇달아 각 극장을 산하에 거느리게 되면서 흥행계는 점차 통일되는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창업으로부터 불과 34년 만인 1929년에는 대극장의 가부키 공연을 쇼치쿠가 전부 맡게 됩니다.

가부키의 해외 공연 역사는 1928년의 소련(현재의 러시아) 공연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후 지금까지 가부키가 해외 공연으로 찾은 나라와 도시는 38개국 115개 도시에 이릅니다(2019년 11월 현재).

쇼치쿠는 가부키뿐만 아니라 신파극, 신희극, 번역극, 경연극, 분라쿠, 레뷔 등 다채로운 엔터테인먼트를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제공해 나가면서 무엇보다 가부키의 제작과 흥행에 중점을 두는 것은 쇼치쿠 창업의 계기가 가부키였던 것, 그리고 창업자 두 사람의 가부키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현재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부키에 대해